`잡지의 왕`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

디자인은 國富이며 삶을 완성시키는 예술이다

  • 김슬기 기자
  • 입력 : 2013.11.29 15:58:27   수정 : 2013.11.29 16:38:41

 

■ 이영혜 대표는…잡지 `디자인` `행복이 가득한 집` 등 발행 

1953년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기자로 있던 잡지 `디자인`을 인수했고, 1987년 `행복이 가득한 집`을 창간했다. 현재 잡지ㆍ단행본 발행과 리빙ㆍ디자인 관련 이벤트와 페어를 기획하는 디자인하우스를 이끌고 있다. 단행본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240만부),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70만부) 등 베스트셀러를 냈다. 코엑스에서 `서울 리빙 디자인페어`를 1994년부터 매년 봄 열고 있으며,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다. 

 

"나는 살면서 심심해 본 적이 없어." 

결혼자금을 털어 인수한 월간 `디자인`을 발판 삼아 잡지쟁이 37년. 지금은 8개 월간지와 기업 출판물, 단행본을 만드는 `잡지의 왕`에게 일과 결혼한 생활(예순의 싱글이다)이 단조롭진 않으냐고 물었더니 "지루할 틈이 없다"고 했다. 26일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의 책상엔 그가 만드는 잡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갈피마다 무수히 붙여 놓은 포스트잇. 주말에 직접 가보고, 맛보고, 여행할 곳을 표시해 둔 거다. 그는 `무조건 직접 가보는` 행동파다.그렇게 동시대의 트렌드를 익힌다. 최근 몇 년은 주말이면 창을 배우러 다녔다. 배우지 않아도 만드는 잡지만 들여다봐도 눈이 아플 정도다. 홍익대 미대를 나와서 무역회사를 다니다 `디자인`에 기자로 입사한 게 1977년. 1980년 휘청거리는 회사를 인수했더니 1년도 안 돼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으로 잡지가 폐간됐다.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복간시킨 `디자인`은 12월호로 통권 426호를 맞았다. 

-`디자인`이 37년이 된 국내 최장수 잡지 중 하나가 됐다. 

▶나는 `디자인`과 결혼했다. 37년 만에 처음으로 작년에 흑자를 냈는데 정말 기뻤다. `마이웨딩` `맘&앙팡` `디자인`은 늘 적자인데, `행복이 가득한 집`은 부동의 흑자였고, `럭셔리`와 다른 잡지들이 플러스 마이너스 해서 22년 동안 적자를 안 봤다. 회사의 모든 시작점이 `디자인`이다. 모든 잡지가 `디자인`을 모태로 해서 레이아웃을 중요시한다. 디자이너, 아티스트를 가장 많이 뽑은 덕분에 `디자인 페스티벌`도 하고 `서울 리빙 디자인페어`도 열었다. 이 모든 바탕이 되는 잡지기 때문에 적자난다고 접자고 한 적이 없다. 내 운명이다. 디자인이 척박한 이 나라에서 여기까지 버텨온 게 기특하다. 이제는 산업에서 디자인을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다. 원래 기술은 보이는 게 아니다. 빠르게, 더 쉽게 만드는 거다. 마지막에 눈에 보이는 건 디자인이 전부다. 그리고 어느 분야라도 융합돼 들어가 있다. 재료를 만들 때도, 시장을 읽고 마케팅할 때도, 개발할 때도. 그동안 전문가를 대상으로 잡지를 만들다 보니 녹록지 않았지만 디자인의 가치는 국부(國富)와 맞닿아 있다는 철학이 늘 있었다. 

-20대부터 잡지를 만들면서 고충이 많았을 것 같다. 

▶옛날에 잡지는 서점에서만 팔았다. 반품을 받으니 작은 사무실에 쌓을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정기구독을 시작한 게 `디자인`이다. 정기구독 5000부가 되니까 영업부가 5명인데, 누런 봉투에 손으로 주소를 썼다. 한 사람이 1000개를 쓰다 보면 저녁이면 글씨가 괴발개발이었다. 영업하기도 바쁜데 봉투까지 쓰느라 매우 힘들었다. 그때 컴퓨터라는 게 나왔다. 컴퓨터학원에 가서 수업을 들으며 질문을 하도 했더니 그러더라. `아줌마, 안 나오시면 안 돼요?` 그래서 청계천을 뒤져서 영민한 친구를 만났다. 주소를 한 번만 치면 5000명이 프린트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조그만 회의실을 3개월 내줬더니 만들어 내더라. 그 뒤론 잘라서 풀칠만 하면 됐다. 직원들 노고를 줄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때 배운 게 컴퓨터로도 하려면 뭐든 할 수 있구나하는 가능성이다. 

이후에 만든 `행복이…`도 1만5000부 구독이 됐다. 책이 나오면 만날 전화가 온다. `그 제품 어디서 사요?` 그걸 직접 보여주고 파는 게 `서울 디자인 페어`다. 

촬영해 보면 농약을 쳤는지 안 쳤는지 속속들이 안다. 그래서 잡지에 `안방에서 장 보기` 코너를 만들었더니 한 달에 김치만 7000만원어치가 팔리더라. 홈쇼핑을 해야겠다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좋은 걸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하게 된 거다. 지금도 성장곡선이 가파르진 않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모든 사업이 공통적으로 든든한 독자가 있어서 한 거다. 교토에 가면 시어머니, 며느리 둘이서 `앙꼬 모찌`를 판다. 1인당 2인분밖에 못 산다. 그러면 재고가 없어 좋고, 열심히 할 수 있고, 여가 시간이 있어 좋다. 그런 경영을 배우고 싶다. 
 

-잡지시장이 어려운데도 성장을 이어가는 비결은. 

▶매출이 470억원 정도다. 잡지시장이 둔화된 지 몇 년이 됐다. 우리도 정기구독자가 있어서 버티고 있지만 광고매출이 줄고 있다. 미래 숙제는 디지털 플러스 디자인(D&D)이다. 디지털 매거진도 제일 먼저 만들었다. 그쪽은 광고가 안 돼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매체는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는 소스를 개발한다는 점에서 좋은 역할을 한다. 디지털 매거진이든 웹에 뿌려지든. 우리는 일찍이 모든 매체를 디지털 라이브러리화했다. `맛집`이라고 치면 모든 취재 정보가 나오는 인트라넷을 개발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매체를 만들더라도 백데이터가 될 거다. 미디어 환경은 변했더라도 독자를 늘리려 한다. 요즘은 굉장히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람들이 피로도를 느낀다. 하나를 익히면 또 다른 게 나온다. 

우리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건 맞지만 그럴수록 담대하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잔돈을 벌려고 하면 안 된다. 그래서 미래가 걱정되면서도 안 된다. 철학이 없으면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거다. 확실한 사람은 안 흔들린다. 미디어를 발행한다는 것에 대한 자기 신념과 철학이 이럴 때일수록 꼭 필요하다. 물론 새 기술에도 무관하라는 게 아니라 잘 보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맘&앙팡`부터 `마이웨딩` `행복이 가득한 집` `맨즈헬스`까지 세분돼 있다. 좁고 깊은 시장이다. 작은 건 타깃이 확실하지 않나. 작은 집단과 커뮤니케이션을 훨씬 활발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잡지가 다른 미디어보다 더 승산이 있다고 본다.  

-트렌드를 잡아 내고, 동시대와 호흡하는 방법은. 

▶잡지는 어쩌면 거기가 유명하다고, 뭐가 들어왔다고 제일 먼저 보도하면서 우리는 정작 안 변한다. 그 간극을 줄이는 게 과제다. 그걸 글로 풀고 끝나면 안 된다. 그 행동하는 게 비즈니스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더듬이를 열심히 갖다대야 한다. 대표라 오히려 제일 기동력이 있다. 시간을 쪼개서 매일경제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잡지에 나온 새로운 곳을 다 가본다. 그게 제일 중요한 스케줄이다. 계속 보다 보면 안 봐도 될 게 보인다. 약속을 해도 커피숍을 안 가고 그 회사를 간다. 그게 상대를 이해하는 데 최고다. 현장을 가라. 심지어 해외에 뜨는 게 있다고 하면 짧게라도 다녀온다. 본 만큼 소화되고 살이 찐다. 작은 상품도 꼭 사고 혼자서 점쳐 본다. 되겠다 안 되겠다를. 

-한국은 오랫동안 디자인 2류 국가였다. 그런데 튀어나온 못처럼 일류 제품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가능했나. 

▶1류가 되려면 생태계가 있어야 된다. 일류 디자인이 나오려면 만들 때 분석도 잘해야 하고, 좋은 재료도 사고, 좋은 디자이너와 파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튀어나온 못은 없다. 한국은 음악이나 스포츠처럼 혼자 하는 건 다 잘한다. 열정적인 엄마 아빠가 받쳐줘서 김연아도 나왔다. 그런데 디자인은 세계적으로 겨루려면 팀플레이가 돼야 한다. 한국인은 디자인 감각을 갖고 태어났다. 그런데 제도와 팀과 결합하고, 산업으로 어떻게 발현하느냐가 부족했다. 현대차나 삼성 전자제품처럼 아직은 1등이 몇 개밖에 없다. 디자인은 산업과 연결돼 있지만 산업의 시녀가 아니다. 동반해 성장한다. 더 많은 1등이 나오고, 선박도 크루즈나 요트를 만들어야 한다. 최고급 인테리어가 들어가니까. 매장도 디스플레이 디자인까지도 중요하다. 디자인은 혼자서 못한다. 그 산업 분야가 얼마나 발전되느냐가 바로미터다. 

■ 마지막 목표는 

아시아서 유명 잡지 내고 우리 中企 제품 팔고싶어
 
 

- 디자인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나. 

▶안경, 옷이 나를 보여준다. 삶을 완성시키는 게 디자인이다. 똑같은 것도 디자인적으로 사고하면 훨씬 더 돈으로 바꾸기 쉽다. 남의 마음을 훔치고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게 디자인이다. 디자이너는 전체 트렌드도, 세부적인 면도 알아야 한다. 20대 남성 기자를 위한 핸드백이냐, 30대 워킹우먼을 위한 컴퓨터냐. 이렇게 계속 타깃을 쪼개야 된다. 범용성과 특수성이 만나야 좋은 디자인이다. 

-`더 셀러브리티`를 SM엔터테인먼트와 합작해 11월호부터 내고 있다. 한국이 아니라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잡지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을 20년 전부터 알았는데 그때 이런 얘기를 들었다. 앞으로 스타를 앞세워 물건도 더 팔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 사람이 얼마나 뛰어난지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지금 이 나라엔 선생님이 없다. 스타뿐이다. 김연아가 귀고리를 하면 대박 난다. 그래서 고민했다. 저들을 선생으로 삼되 너무 소모적이지 않게 무대 위에서 내려온 생활 속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로 만들자고. 지난호에 장동건 의자를 만들었다. 100만원짜리가 팔리더라. 루이비통도 일본 화가 무라카미 다카시랑 협업을 했는데 우리는 왜 안 되나. 스타에게 품격을 만들어주고 스타일을 만들어주고 싶다. 아시아 시장 11개국을 접촉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관심을 보인다. 

`더 셀러브리티`는 내가 그동안 경험한 모든 걸 다 집어넣은 잡지다. 5만부를 찍었는데 1만7000부를 일본에서 사갔다. 잡지계에서 재판을 찍은 건 근 10년래 처음인 거 같다. `맨즈헬스`를 로열티를 내고 만드는 데 아깝다. 이제는 처음으로 로열티를 받는 매체를 만들고 싶다. 유럽ㆍ미국은 중국에 와서 사무실을 다 차리는데 우리는 왜 유럽ㆍ미국을 바라보나. 그래서 아시아 시장을 다시 보자고 아시아 통합 앨범 차트도 실었다. 아시아에서 이름나는 잡지를 하고 싶다는 게 내 마지막 목표다. 스타의 힘을 빌려 우리 디자인, 중소기업 제품을 팔아보고 싶다. 이 잡지를 성공시키면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해서 창업스쿨을 만들 계획이다. 한국인이 가진 좋은 손재주를 꽃피워 보고 싶다.